상국사


상국사는 전국시대 위나라의 공자 신릉군(信陵君)의 옛 저택자리였다고 한다. 북제 때인 555년에 절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처음 창건될때는 건국사(建國寺)라고 불렸으나 전쟁으로 불타버렷다. 그 후 당나라 때인 711년에 이 절을 증건했고. 다음해인 712년에 당나라 예종(睿宗)은 황제에 오르기 전 상왕(相王)이었던것을 기념하여 친히 조서를 내려 상국사로 이름을 개칭햇다. 명나라때 홍수 때문에 완전히 훼손되었다가 청나라 강희(康熙) 10년(1671)에 재건되었다. 현재는 박물관인 이곳에 오도자(吳道子)의 문수유마상(文殊維摩像), 양혜지(楊惠之)가 새긴 정토원대전신불(淨土院大殿神佛), 왕유일(王唯一)이 만든 침구동인(針灸銅人) 등의 귀중한 문화재가 많이 보관되어 있다.

상국사의 종은 정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 전각에 있다. 개봉의 번영을 상징하는 변경팔경(汴景八景)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이것은 무게가 5톤이나 나가는 거대한 것으로 청대건륭(乾隆) 33년(1768)에 주조되었다. 서리가 내리는 날에 이 종을 치면 개봉시내에 그 소리가 메아리쳤기 때문에 서리종(霜鐘)이라고도 한다.

현재의 건물인 천왕전(天王殿), 대웅보전, 팔각유리전(八角琉璃殿), 장경루(藏經樓) 등은 청대의 건물이다. 모든 절의 입구에 모셔져 있는 미륵불이 이곳의 첫 번째 법당인 천왕전의 유리상자에 앉아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대웅보전에는 약사여래, 석가모니,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고, 가슴에 만(卍)자가 새겨져 있는데 측천무후시기의 글자라고 한다.

팔각정에는 은행나무 고목을 조각해서 금으로 도금한 높이 7M의 자비를 뜻하는 천수천안관음보살(千手千眼觀音菩薩)상이 있다. 건륭제시기인 1730년에 거대한 은행나무로 만든것이다.

장경루에는 흰 옥으로 만든 석가모니불이 있다. 1991년 싱가포르 사람이 기증한 것으로 그곳에는 “이곳에 온자는 장수한다”는 의미의 상자수시(相者壽是)라는 글씨가 씌여있다.

상국사는 사원의 역할만 한것이 아니라, 교역장소로서도 유명햇다.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는 상국사를 매월 다섯차례 백성들에게 개방하여 교역을 하게 하였고, 대삼문(大三門) 안쪽에는 진기한 새와 짐승 등 없는것이 없었다고 한다. 즉, 부유한 상인들이 교역을 진행하는 북송 최대 상업시장의 하나였던것이다. 송대의 왕구(王捄)라는 사람이 쓴 “연익이모록(燕翼貽謀錄)”에는 “상국사는 와시(瓦市)이다. 가운데 뜰에 있는 두 개 낭하에는 만명을 수용할수 있다. 장사꾼들이 교역하는 물품은 모두 그 가운데 모여 있으며, 사방에서 수도에 모인 화물은 모두 이곳을 경유하여 매매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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