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사

 소림사는 불교의 8개 종파 가운데 선종, 즉 조동종의 발상지이다. 사람들은 소림사 하면 천하 최고의 소림무술을 떠올린다. 그러나 소림사가 불경에서 이야기 하는 연화장세계를 재현하려고 만든 절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림사의 창건 경의를 보면 소림사에 담겨진 깊은 뜻을 알수 있다.

소림사는 북위 시대 효문제의 태화(太和) 19년(495) 소실산 북쪽에 건축되었다. 흔히 소림사는 달마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착각하지만 인도의 고승 발타(跋陀)가 창건한 사찰이다. 소림사라는 이름은 “소실산의 무성한 수림”이라는것에서 나온것이다. 발타가 북위의 수도 대동(大同)에 도착한 후 효문제는 물론이고 귀족과 부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효문제는 그를 위해 특별히 사찰을 만들어주고 불법을 닦게 햇다. 그후 낙양으로 천도한 효문제는 조용히 수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발타를 위해 소실산에 소림사를 지어주었다.

원래 발타가 숭산에 절을 만들려고 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발타는 이곳 숭산의 산세가 마치 연꽃처럼 생긴것을 보고 꽃봉오리 한가운데에 절을 만들려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숭산은 공중에 떠 있는 꽃봉오리처럼 생겼고 72개의 봉우리는 꽃잎처럼 생겼다. 결국 발타의 소망이 이루어져 소림사는 연꽃 한가운데 자리잡은 연화장세계가 되었다. 연화장세계는 이상적인 불국토를 가리키는 말이다. 천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연꽃이 있는데 꽃잎마다 세계를 이루고 있다. 비로사나여래는 그 연꽃위에 앉아서 몸을 변화시켜 천명의 석가모니불이 되고, 석가모니는 다시 100억 보살이 되어 보리수 아래에서 설법한다고 한다.

또 소림사 하면 달마대사를 떠올리게 된다. 한국의 사찰에 가면 구레나루수염이 무성한 달마대사가 갈대잎을 타고 강을 건너는 그림을 종종 볼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527년에 인도 승려 달마대사가 이곳에 선종을 전수했고 벽만 마주보고 9년 동안 수도햇다고 한다.

소림사의 산문을 들어서면 천왕전과 대웅전터가 있으며 정문 앞에는 돌사자가 있다. 소림사가 전란중에 소실되어 중축되었지만 이 돌사자만은 당시의 것이 그대로 남아있다. 소림사안에서 볼만한것으로는 달마가 9년동안 면벽수도를 햇다는 달마동(達磨洞)과 역대 화상들의 묘지와 전탑이 빽빽이 서있는 탑림(塔林) 소림사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묘사해놓은 벽화 등이 있다.

안으로는 천왕전, 대웅전, 법당, 방장실, 입설당, 천불전, 백의전이 차례로 나온다. 그중에서 천불전에 있는 오백나한의 벽화가 볼만하다. 대웅전 건물안에는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이 있으며 달마대사는 아미타불 뒤에 있다. 또한 입구의 오른쪽에는 종 아래에 신라 시대 승려인 교각(敎覺), 즉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다.

이곳에 의당 있을것으로 생각하기 쉬운 쉬운 달마대사의 탑은 원래 삼문협에 있었으나 현재는 없어졋다고 한다. 가장 높은것은 7층탑으로 승려의 수행정도, 무술정도, 제자의 수에 따라 크기를 달리하며 소림사의 벌전에 공헌이 없으면 세울수 없다고 한다. 탑에 문이 없는것은 대체로 고승들의 개인탑이고, 문이 있는것은 사리를 함께 모시는 공용탑으로서 무명승려들의것이다. 문이 있다는것은 그 탑에 또다시 사리를 모실 때 연다는 의미이다.


소림무술

소림사가 선종의 발상지라고 할때, 현재 100명의 승려는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소림사의 특이한 점은 승려들이 무술을 익힌다는 것이다.

당나라 시기의 배최(裵漼)가 쓴 “소림사비(少林寺碑)”에 따르면, 수나라 말기에 소림사 승려 지조(志操), 담종(曇宗) 등이 당(唐) 제국 건설에 무공을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 태종은 즉위 후에 토지 30경을 하사하고 절을 크게 확충시켰다. 또한 소림사에 무술승려를 두고 술과 고기를 먹을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이후에 승려가 무술을 연마하는 전통이 계승되어 소림사는 무술로 천하에 이름을 날리게 되엇다. 당시 승려는 2000명이었으며 무술을 하는 승려가 500여명이었다고 한다.

소림사에서 발원한 소림사 궁푸(公夫)는 영화산업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졋다. 그 무술은 강건함, 소박함, 다양한 동장, 변화무궁, 정밀한 기법이라는 말로 정리된다고 한다. 달마가 동굴에서 나한 18수를 만든 이래 천하의 무술은 소림사에서 나왔다는 명예를 얻었다. 그리고 소림사에서는 3년동안 무술을 연마해야만 승려가 될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소림무술은 소림사안의 무림방(武林房)과 깊은 관련이 있다. 무림방은 소림사 108방의 하나이지만, 다른 방과는 성격이 다른 특수한 방이다. 즉 무림방에서는 자체의 규율을 만들고 전문인을 두어 통솔한다. 소림사의 모든 승려가 무림방에 들어갈수 잇는 것은 아니고 각 방이나 당(堂) 또는 소림사에 소속된 사원에서 추천을 받아야 한다. 무림방에 내야 하는 학비는 이들이 소속된 곳에서 내준다. 때문에 그들은 생활에 비교적 여유가 있고 먹는 음식도 좋은 편이다. 이들은 일반 승려들이 행하는 노동과 염불을 할 필요도 없으며 자나깨나 무공 단련에 정진하기만 하면 된다.

소림사 승려들은 모든 것들이 무기가 될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술 시범중에는 삽을 들고 나와 하는 무술도 잇는데, 이는 밥을 푸다가 나온 무술이라고 한다. 소림사 경내에 있는 명대의 가마솥은 4000명이 식사할수 잇을 정도로 거대하여 무게가 1300근이나 나간다고 한다. 당연히 밥을 푸는것도 주걱이 아니라 삽이었을것이니 삽을 이용한 무술은 이에서 유래된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빗자루를 이용한 무술은 소림사 경내를 청소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것이다.

한편 소림사의 무술학교에서 수련하는 자는 무려 만명이나 되는데 일부는 경찰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탑림 소림사 고승들의 흔적이 남겨져 있는, 탑림

수많은 탑들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 마치 숲과 같다고 이름 붙여진 탑림은 소림사 역대 고승들의 무덤으로 소림사에서 서쪽으로 400미터 떨어진 산기슭에 자리잡고있다. 이곳은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많은 수의 탑이 있으며 규모 역시 가장 큰 고분군으로 벽돌로 만들어진 묘탑이 240여개 있으며 면적이 14000여 평방미터에 달한다.


탑은 일반적으로 7층으로 가장 높은 것이 15미터이며 형태는 정방형,장방형,육각형,원형,원주형,송곳형, 병모양,나팔형 등이 있다.

불가의 법에따라 단지 명승이나 고승의 원적 후에만 탑을 만들어 생전의 공적 등을 탑돌에 새길 수 있었다. 탑의 형태나 층수 높이와 크기, 벽돌건축과 조각예술의 표현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에 따라 스님의 생전 불교계의 지위나 성과, 덕망의 높고낮음을 가늠할 수 있다.

이곳 탑들의 형상과 구조는 매우 다양하고 명문 내용도 풍부하여 불교사 및 중국 고대 벽돌건축, 필법, 조각 연구에 매우 귀한 자료가 되고있다.

달마동 

오유봉정상에서 10여미터 떨어진 곳에 달마동이 있는데 깊이는 5미터 너비는 3키터가량 되는 자연석굴이 하나 있다. 이것이 바로 달마가 9년동안 면벽을 했다는 "달마동"이다. 전설에 따르면 달마가 소림사에 온후 이 동굴에서 9년을 면벽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따라 그림자가 석굴에 있는 돌위에 비껴서 달마가 면벽하는 자태를 보이는 형상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옷의 주름까지 흐릿하게 볼수 있어 수묵화를 방불케 한다. 사람들은 이 돌을 "달마면벽형석"이라고 부른다. 후에 사내의 스님들은 이 그림자가 없어질가바 그림자 형태를 돌로 쪼아서 소림사 내에 가져다 놓았다고 한다. 동굴에는 명대만리년간(明代万历年间)의 석방과 달마 혜가(慧可)의 돌조각상이 있다.



일조암(초조암)

소림사의 서북쪽으로 1키로 정도 가면 오유봉 아래 초조암에 도착할수 있다. 이는 달마시조의 면벽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암자로서 "면벽암"이라고도 한다. 이 암자는 북송년간(北宋年間)에 세워졌으며 다양한 석각으로 유명하다. 초조암내에는 대전, 산문, 천불각 등 건축이 있으며 초조암 대전은 하남성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나무결구로 된 건축물이다. 대전내에는 12대의 석주가 있는데 악기, 동자, 새, 보상화, 목단화 등의 도안이 새겨져 있다. 대전 동서북 3면에는 아름다운 조각이 있는데 대부분 인물, 동물 새 가축 등이 위주이고 조형이 생동하다. 대전 신대위에는 돌조각의 진품들이 있는데 화초가 무성하고 밭들이 정연하게 새겨져 있고 떠돌이 스님, 배타기를 기다리는 행인들도 있으며 사원, 보탑 흐르는 강, 강위의 작은 다리가 새겨져 있어 세외도원을 방불케 한다. 이 외에 암자내에는 역대의 명가들이 세운 비(碑) 및 비각(碑刻)이 40여통이나 있다.


이조암

 

 소림사 서남쪽으로 4키로정도 가면  소실산 중턱에 바리와 비슷하게 생긴 봉우리가 있는데 “바리봉(钵盂峰)”이라고 부른다. 이 봉우리 남쪽에 가면 작은 사원이 있는데 바로 이조암이다. 이조암은  선종이조 혜가(慧可)를 기념하여 그의 제자들이 세운 암자이다. 암자내 절벽에는 아직도 “양방대(养膀台)”의 흔적이 남아있다. 암자내에는 전방(殿房)이 3방이 있는데 명 청비가 여러개 있어며 고목이 3그루 있다. 정원4각에는 우물이 4개 있는데 바로 유명한 “탁석천(卓錫泉)”이다. 암자 주위에는 696년이우에 세운 전탑 3좌가 있다.         (지역: 정주>하남성>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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